티스토리 뷰
목차

퇴직 날짜가 1년 남았다는 걸 달력에서 확인한 날, 솔직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30년 넘게 출근 알람에 맞춰 살았는데, 그게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싶었습니다. 저는 그 불안감을 없애는 방법으로 퇴직 전부터 취미를 하나씩 채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미리 준비해야 퇴직 다음 날 아침이 낯설지 않다는 걸, 지금은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퇴직 후 일상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퇴직하면 그때 가서 뭔가 해볼게"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주변에서 퇴직한 선배들을 보니, 준비 없이 맞이한 첫 한 달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일상의 리듬감, 즉 서카디안 리듬(Circadian Rhythm)이 깨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서카디안 리듬이란 인체가 24시간 주기로 수면, 각성, 호르몬 분비 등을 조절하는 생체시계를 말합니다. 수십 년간 직장 생활로 고정된 이 리듬이 퇴직과 함께 흔들리면 수면 장애, 무기력감, 우울감이 따라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퇴직 1년 전부터 의도적으로 취미 활동을 평일 일과에 끼워 넣었습니다. 매일 아침 30분 산책, 주 2회 수영, 격주 파크골프. 이것이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퇴직 이후의 하루를 설계하는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해보니, 취미가 먼저 몸에 배어 있으면 퇴직 이후에도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반대로 퇴직하고 나서 시작하려 하면 작은 것도 낯설고 귀찮아지기 쉽습니다.
건강수명(健康壽命)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중요합니다. 건강수명이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간의 격차는 약 10~15년에 달합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이 격차를 줄이는 데 꾸준한 취미 활동이 실질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 퇴직을 앞두고 제가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입니다.
몸을 움직이는 취미, 어떤 기준으로 고르셨습니까
신체 활동형 취미를 고를 때, 저는 한 가지 기준을 먼저 세웠습니다. '20년 뒤에도 계속 할 수 있는가'였습니다. 격렬한 운동은 지금 당장은 좋아도 관절이 버텨주지 못하면 끊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기준에서 제가 선택한 것이 수영과 파크골프입니다. 수영은 부력(浮力) 효과 덕분에 관절에 가해지는 하중이 육상 운동보다 현저히 줄어듭니다. 부력이란 물속에서 물체를 위로 밀어 올리는 힘으로, 체중의 약 90%를 수중에서 지지해 주기 때문에 무릎 연골이나 척추 디스크를 가진 분들에게도 부담이 적습니다. 구청 공공 수영장을 이용하면 월 3만 원 안팎으로 즐길 수 있어, 경제적 부담도 거의 없습니다.
파크골프는 제가 직접 해봤는데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일반 골프와 달리 채 하나, 공 하나로 전용 파크골프장에서 라운딩이 가능하고, 비용도 회당 몇 천 원 수준입니다. 규칙이 단순하고 페이스(Pace)가 느긋해서 처음 접하는 분들도 두세 번이면 흐름을 따라갑니다. 직장 퇴직 동료들과 함께 나가는 날이면, 운동보다 대화가 더 즐거울 때도 있습니다.
신체 활동형 취미를 선택할 때 저는 이 세 가지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 관절 부하가 적은 저충격(Low-Impact) 운동인지
- 날씨나 계절에 상관없이 지속 가능한지
- 혼자가 아닌 함께 할 수 있어 사회적 교류가 되는지
이 기준에 수영, 파크골프, 그리고 매일 아침 산책이 모두 해당되었고, 저는 지금도 그 선택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두뇌를 자극하는 취미가 따로 필요한 이유
운동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체 건강 못지않게 인지 기능, 즉 두뇌가 얼마나 활발하게 작동하느냐도 노후의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인지 기능(Cognitive Function)이란 기억, 판단, 언어, 집중력 등 뇌가 수행하는 고차원적 활동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이 기능이 저하되면 일상적인 판단력이 흐려지고, 심하면 치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 부분을 실감했습니다. 악기 연주는 손가락 소근육을 정밀하게 쓰는 동시에, 악보를 읽고 박자를 맞추고 호흡을 조절하는 복합적인 뇌 활동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솔직히 처음 두 달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운동신경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손가락과 호흡이 따로 놀더군요. 그런데 그 어려움 자체가 두뇌를 자극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뇌 가소성이란 뇌가 새로운 자극이나 학습에 반응해 신경 회로를 새로 형성하고 변화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것을 배우면 이 능력이 유지되며, 악기 연주나 언어 학습이 특히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외 연구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인지 기능 저하 속도가 유의미하게 느렸습니다(출처: 한국뇌연구원).
독서와 명상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저는 요즘 도서관 전자책 서비스를 활용하는데, 비용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한 권을 다 읽었을 때의 성취감은 운동 후 땀 흘린 것과 비슷한 종류의 만족감을 줍니다. 명상은 마음챙김(Mindfulness) 기법을 유튜브 가이드 영상을 따라 집에서 10분씩 하고 있는데, 수면의 질이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취미를 '지속'시키는 것이 진짜 실력입니다
새해마다 헬스장 등록하고 2월에 그만두신 경험, 한 번쯤은 있지 않으십니까. 취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작보다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저는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 취미를 '혼자 하는 것'과 '함께 하는 것'으로 나눠 배치했습니다. 산책, 명상, 베란다 제라늄 가꾸기는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수영과 파크골프는 퇴직 동료들과 함께 합니다. 혼자 하는 취미는 날씨나 상대방 일정에 구애받지 않아 지속하기 쉽고, 함께 하는 취미는 약속이 생기므로 쉽게 빠지기 어렵습니다.
베란다 제라늄 가꾸기는 제가 가장 의외의 기쁨을 느끼는 취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화분 상태를 확인하고 물을 주는 짧은 루틴이,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의식이 되었습니다. 원예 치료(Horticultural Therapy)라는 분야가 있는데, 원예 치료란 식물을 기르고 돌보는 행위가 정서적 안정과 우울감 완화에 미치는 치료적 효과를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흙을 만지고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는 행위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입니다.
취미를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된 저만의 방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주간 루틴에 고정 시간대를 배정한다 (예: 화·목 오전 수영)
- 같이 할 동료를 한 명 이상 만든다
- 결과가 보이는 취미를 하나 포함시킨다 (식물 성장, 악보 연주 등)
- 월 1회 이상 새로운 코스나 장소에서 해본다 (산책 코스 변경, 새 파크골프장 등)
이 네 가지를 실천한 이후로 중간에 그만두는 취미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제 경험상 취미는 '의지'보다 '구조'를 만드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설계가 필요한 새로운 출발입니다. 저는 지금 그 설계를 1년 전부터 몸으로 연습하고 있습니다. 어떤 취미가 맞는지 모르겠다면, 일단 비용이 들지 않는 것 하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 하나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거창한 계획보다 내일 아침 30분 산책이 인생 2막을 여는 첫 페이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또는 재활 치료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상태에 따라 적합한 활동은 다를 수 있으니, 지병이 있으신 분은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 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oldandwise4567.tistory.com/34
https://cms.eroum.co.kr/?p=798
https://cafe.daum.net/isbobyb/EwFh/2298